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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교사(圓佛敎敎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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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교사(圓佛敎敎史)

제3편 성업(聖業)의 결실(結實)

제5장 개교 반백년(開敎半百年)의 결실(結實)

2. 수양기관 설립과 재단 기업 계열화

원기 48년(1963·癸卯) 4월, 수위단회에서는 정남 정녀 휴양 기관으로 수도원의 설립이 의결 되었다. 일찌기 대종사께서 계획하시고 정산 종사 당시부터 그 설립을 모색, 자체에서 기금을 길러 온 수도원이, 이에 이르러 공식으로 발족되고, 초대 원장에 이 공주가 선임 되었다. 수도원은, 그 후 서울 한남동 대지를 인수, 그 완전 불하에 공헌하였으며, 한동안 양주 농장 등을 경영하였고, 55년(1970·庚戌) 1월에는 종로 5가에 건물을 매입하여 한의원 발족을 모색하였다.
한 편, 원기 39년(1954·甲午)에 부안 교당(교무·丁良珍) 발의로 수도원에서 매입한 변산 하섬은 봉래산 제법 성지의 기슭에서 새 회상의 해상 수양원 겸 편수 도량이 되었으며, 46년(1961·辛丑)에 정산 종사의 발기로 대지(9백여평)를 매입, 남선 교당을 옮겨 둠으로써 시작된 충남 신도 수양 기관은 대산 종법사의 직접 후원 아래 7년 동안 기지 확장과 건물 매입을 계속해 오다가, 52년(1967·丁未) 10월, 수위단회에서 삼동 수양원(초대원장·李炳恩) 설립이 의결됨으로써 유서 깊은 지역에 특수한 수양원 기능을 발휘하게 되었다. 또한 회상 초기부터 특별 연지(緣地)이던 진안 만덕산은 52년(1967·丁未)부터 복구 개발에 착수, 앞으로 선농 일치의 수양 기관을 모색 중이고, 기타 각처의 교단 양로원들이 다 수양원의 기능을 겸행하여 노후 유공인들의 수양에 공헌하고 있다.
한 편, 새 회상이 반백년을 지내오는 동안, 교단의 여러 산업 기관들이 기복과 성쇠를 거듭하는 가운데, 보화당은 이 동안·송 혜환·조 희석이 차례로 대표 이사의 대를 이으며, 각 부면의 경제에 많은 공헌을 하는 중, 49년(1964·甲辰) 4월에는 이리 삼중당 제약사를 흡수하여, 그 해 9월에 보화 경옥고를 주종목으로 하는 보화당 제약사(사장·趙暿錫)를 창설함으로써 보화당은 상공업 병진 기업체가 되었고, 55년(1970·庚戌) 7월에는 기업의 중앙 진출과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하여 종로 5가에 서울 보화당(회장·李共珠사장·李喆行)을 개설하고, 이어서 57년(1972·壬子) 7월에는 이리 역전 보화당(사장·李喆行)을 개설함으로써 재단 기업체 보화당은 차차 계열 기업화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