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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교사(圓佛敎敎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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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교사(圓佛敎敎史)

제3편 성업(聖業)의 결실(結實)

제4장 결실성업(結實聖業)의 전진(前進)

1. 정산 종법사 열반과 대산(大山)종법사 추대

원기 47년(1962·壬寅) 1월 24일, 정산 종법사께서 열반하시었다. 대종사의 뒤를 이어 3차 연임을 거듭하신 19년 동안, 일정 압제의 고비와, 건국 초기의 혼란과, 교단 경제의 간난 가운데, 교단 체제를 완비하고, 성업 봉찬 사업을 주도하시며, 목표 사업 기관들을 확립하고, 일원 세계 건설의 터전을 다지신 정산 종법사는, 만년에는 요양을 겸행하면서, 정력을 기울여 이 해 1월까지 교전 편수를 친감하시다가, 22일, 대중에게 삼동윤리를 거듭 설하시고 [한 울안 한 이치에 한 집안 한 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는 송(頌)을 남기신 후, 24일 열반에 드시니, 세수는 63세요 법랍은 45년이었다.
이에, 교정원장(李完喆)이 종법사의 권한을 대행하여 긴급 수위단회와 간부 연석 회의를 열고, 그 법위를 정식 대각여래위로 추존하는 동시에 장의 위원회(위원장·朴光田)를 구성하여, 28일 오전, 원광 대학 광장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이리 화장장에서 다비한 후, 성해(聖骸)를 총부에 모시고, 총지부 일제히 봉도식과 초종 재식을 엄수하였다.
장례를 마치고, 1월31일 수위단회에서는 당시 수위단의 남자 중앙 단원인 대산 김 대거 법사를 후계 종법사로 선거하고, 2월23일 중앙 교의회의 절차를 거쳐, 새 종법사 추대식을 총부 대각전에서 거행하였다. 대산 종법사는, 원기 전 2년(1914·甲寅) 음 3월16일에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全羅北道鎭安郡聖壽面佐浦里)에서 연산 김인오(連山金仁悟)와 봉타원 안 경신(奉陀圓安敬信)의 5남매중 장남으로 나시었다. 어려서 부터 기상이 늠름하고 성격이 대범하여 대인(大人)의 풍이 보였으며, 11세 때 조모를 따라 만덕산에서 대종사께 귀의하고, 16세에 출가하여, 3년간 총부에서 학원 생활 중 대종사와 은부자의 의(義)를 맺었으며, 그 후 7년간 서무·상조·공익·육영·교무 각 부의 서기를 차례로 역임하면서 5년간 대종사의 시봉을 겸행하였다. 원기 22년(1937·丁丑)부터 서무부장·교무부장·감사부장·총부 교감 겸 예감 등에 차례로 임명되었으며, 원기 28년(1943·癸未), 수위단원에 보선되고, 31년(1946·丙戌)에는 총부 서울 출장소장에 피임, 해방 직후 다난한 교단 발전에 3년간 공헌하였다. 그 후로는 원평·총부·진영·다대 등지에서 요양하면서 대종경 자료를 정리하다가 37년(1952·壬辰)에는 수위단 중앙에 피선, 대산(大山) 법호를 받고, 교정원장에 피임되었으며, 44년(1959·己亥)에는 중앙 선원장에 피임되었으나 영산에서 요양하면서 정관평 재방언과 성지 사업의 기초를 세웠다. 46년(1961·辛丑)부터 하섬·신도 등지에서 교재를 연마 중, 정산 종법사 특별 유시로 정화사 감수위원에 위촉되었고, 정산 종법사의 열반에 따라 후계 종법사로 추대 되시었다.
한 편, 이 때 중앙 총부 각 부면의 인사 개편으로, 수위단 남자 중앙 단원에 박 광전이 선정되고, 교정원장에 박 장식, 감찰원장에 이 완철, 중앙 교의회 의장에 문 동현이 각각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