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 50년(1965·乙巳) 4월에 총부 서울 사무소(소장·李雲捲)를 다시 열었다. 이는 50년대에 접어 든 새 회상이 국내에서 그 결실을 더욱 촉진하기 위한 한 조치였다. 드디어 그 해 6월,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주최한 한국 6대 종교인의 대화에 황 정신행 등 3인(별록27)이 교단 대표로 참석하여, 불교·유교·천주교·기독교·천도교 등 국내에 공존하는 대표적 종교 지도자들과 2일간의 대화를 가짐으로써 그 해 12월에 한국 종교인 협회가 창립되었고, 새 회상이 그 6개 창립 종교 중의 하나가 되었다. 또한, 그 때에 서울 사무소는 월간지 [종교계](주간李恩錫)를 창간하고, 사무소 안에 종협 사무소를 두게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종협 활동의 중심이 되는 듯 하였으며, 자금난 등 사정으로 통권 7호에 휴간은 되었으나, [종교계]지에 제기된 새 회상 논의 등은 새 회상의 위치를 천명하는 데 한 계기를 지었다. 51년(1966·丙午) 2월에는 새 회상의 교무를 군종으로 파견할 대정부 교섭을 시작하였으며, 그 해 10월 15일에는 종협 제 3차 연구 모임인 원불교 이해의 모임을 총부에서 개최, 이웃 종교인들에게 새 회상을 많이 인식시켰고, 그 후 계속 종협 활동에 적극 참여하다가, 55년(1970·庚戌) 2월에는 교정원장(朴將植)이, 56년(1971·辛亥) 12월에는 중앙 교의회 의장(文東賢)이 각각 그 부회장에 피선되었다. 한 편, 교단의 종협 활동에 발맞추어 51년(1966·丙午) 5월 부터 원광 대학 교학 연구회에서는 대학생 종교제를 발기하여 여러 해 동안 정례 행사화 하였으며, 52년(1967·丁未) 11월에는 청년회 대표가 7대 종교 청년 대표자 간담회에 참석하여 종협 강화책을 제의하였고, 55년(1970·庚戌) 10월에는 서울에서 열린 세계 불교 지도자 대회에, 56년(1971·辛亥) 7월에는 부산에서 열린 한일 불교 친선 [세미나]에 박 장식 등 다수 대표가 참석하여 국제적 종협 활동에도 합력하기 시작하였다. 또 한, 원기 40년대 초기부터 모색하기 시작한 해외 포교는, 48년(1963·癸卯) 11월에 박 광전 등 3인(별록28)이 1개월간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 재포교의 기연을 모색하였고, 당년도 중 영문지 [원부디즘]과 해외 불교지들의 새 회상 관계 기사를 보고 미국인 2명이 처음으로 입교하였으며, 50년(1965·乙巳)에는 [원불교 요람] 중역(中譯)·독역(獨譯)·일역판(日譯版)을 각각 임시판으로 간행하는 동시에, 중국 신문에 새 회상이 처음 소개되었다. 51년(1966·丙午) 3월에는 일본 순교감(徐世仁)을 발령, 2개월 간 일본 재포교를 다시 모색하였고, 11월 태국에서 열린 세계 불교도 대회에 황 정신행을 파견하였으며, 12월에 이 공주가 홍콩·태국·일본 등지를 순방하였고, 52년(1967·丁未) 8월에는 미국 유학생(全八根·鄭惟誠)에게 처음으로 미국 교무를 발령하였다. 이 해에 또한 중역 [정전]이 임시판으로 발간되었고, 53년(1968·戊申) 9월에는 이 운권이 1개월간 중국 불교계를 시찰하였으며, 12월에는 뉴욕의 미국인 교도 가정에 처음으로 법신불이 봉안되고, 종교학자 강 위조(姜渭祚박사)는 미국 종교학회에서 [한국의 원불교와 한국 사회]란 제목의 연구 발표로 미국 학계에 새 회상을 소개하였다. 54년(1969·己酉) 4월에는 말레이지아에서 열린 세계 불교도 대회에 김 정용을 파견하고, 영문판 [요람]을 간행하였으며, 7월에는 중국 유학생(金大鉉)에게 처음으로 중국 교무를 발령하였다. 55년(1970·庚戌) 7월에는 박 장식이 10일 동안 일본 종교계를 시찰하였고, 10월, 일본에서 열린 제 1차 세계 종교자 평화회의에 박 광전 등 4인(별록29)이 파견되어 처음으로 세계 종협 활동에 참가, 저명 종교인들을 반백년 대회에 직접 초청하였으며, 56년(1971·辛亥) 5월, 일본의 세계 연방 촉진 종교인 평화 회의에도 박 광전 등 4인(별록30)이 참석하고, 10월에는 반백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영역 교전](全八根역)을 발간하는 등 5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 회상은 해외 포교 진출에 더욱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원불교교사(圓佛敎敎史)
제3편 성업(聖業)의 결실(結實)
제4장 결실성업(結實聖業)의 전진(前進)
5. 종협 참여와 해외 포교 진출
원기 50년(1965·乙巳) 4월에 총부 서울 사무소(소장·李雲捲)를 다시 열었다. 이는 50년대에 접어 든 새 회상이 국내에서 그 결실을 더욱 촉진하기 위한 한 조치였다. 드디어 그 해 6월,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주최한 한국 6대 종교인의 대화에 황 정신행 등 3인(별록27)이 교단 대표로 참석하여, 불교·유교·천주교·기독교·천도교 등 국내에 공존하는 대표적 종교 지도자들과 2일간의 대화를 가짐으로써 그 해 12월에 한국 종교인 협회가 창립되었고, 새 회상이 그 6개 창립 종교 중의 하나가 되었다.-br-또한, 그 때에 서울 사무소는 월간지 [종교계](주간李恩錫)를 창간하고, 사무소 안에 종협 사무소를 두게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종협 활동의 중심이 되는 듯 하였으며, 자금난 등 사정으로 통권 7호에 휴간은 되었으나, [종교계]지에 제기된 새 회상 논의 등은 새 회상의 위치를 천명하는 데 한 계기를 지었다.-br-51년(1966·丙午) 2월에는 새 회상의 교무를 군종으로 파견할 대정부 교섭을 시작하였으며, 그 해 10월 15일에는 종협 제 3차 연구 모임인 원불교 이해의 모임을 총부에서 개최, 이웃 종교인들에게 새 회상을 많이 인식시켰고, 그 후 계속 종협 활동에 적극 참여하다가, 55년(1970·庚戌) 2월에는 교정원장(朴將植)이, 56년(1971·辛亥) 12월에는 중앙 교의회 의장(文東賢)이 각각 그 부회장에 피선되었다. -br-한 편, 교단의 종협 활동에 발맞추어 51년(1966·丙午) 5월 부터 원광 대학 교학 연구회에서는 대학생 종교제를 발기하여 여러 해 동안 정례 행사화 하였으며, 52년(1967·丁未) 11월에는 청년회 대표가 7대 종교 청년 대표자 간담회에 참석하여 종협 강화책을 제의하였고, 55년(1970·庚戌) 10월에는 서울에서 열린 세계 불교 지도자 대회에, 56년(1971·辛亥) 7월에는 부산에서 열린 한일 불교 친선 [세미나]에 박 장식 등 다수 대표가 참석하여 국제적 종협 활동에도 합력하기 시작하였다. -br-또 한, 원기 40년대 초기부터 모색하기 시작한 해외 포교는, 48년(1963·癸卯) 11월에 박 광전 등 3인(별록28)이 1개월간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 재포교의 기연을 모색하였고, 당년도 중 영문지 [원부디즘]과 해외 불교지들의 새 회상 관계 기사를 보고 미국인 2명이 처음으로 입교하였으며, 50년(1965·乙巳)에는 [원불교 요람] 중역(中譯)·독역(獨譯)·일역판(日譯版)을 각각 임시판으로 간행하는 동시에, 중국 신문에 새 회상이 처음 소개되었다. 51년(1966·丙午) 3월에는 일본 순교감(徐世仁)을 발령, 2개월 간 일본 재포교를 다시 모색하였고, 11월 태국에서 열린 세계 불교도 대회에 황 정신행을 파견하였으며, 12월에 이 공주가 홍콩·태국·일본 등지를 순방하였고, 52년(1967·丁未) 8월에는 미국 유학생(全八根·鄭惟誠)에게 처음으로 미국 교무를 발령하였다. 이 해에 또한 중역 [정전]이 임시판으로 발간되었고, 53년(1968·戊申) 9월에는 이 운권이 1개월간 중국 불교계를 시찰하였으며, 12월에는 뉴욕의 미국인 교도 가정에 처음으로 법신불이 봉안되고, 종교학자 강 위조(姜渭祚박사)는 미국 종교학회에서 [한국의 원불교와 한국 사회]란 제목의 연구 발표로 미국 학계에 새 회상을 소개하였다.-br-54년(1969·己酉) 4월에는 말레이지아에서 열린 세계 불교도 대회에 김 정용을 파견하고, 영문판 [요람]을 간행하였으며, 7월에는 중국 유학생(金大鉉)에게 처음으로 중국 교무를 발령하였다. 55년(1970·庚戌) 7월에는 박 장식이 10일 동안 일본 종교계를 시찰하였고, 10월, 일본에서 열린 제 1차 세계 종교자 평화회의에 박 광전 등 4인(별록29)이 파견되어 처음으로 세계 종협 활동에 참가, 저명 종교인들을 반백년 대회에 직접 초청하였으며, 56년(1971·辛亥) 5월, 일본의 세계 연방 촉진 종교인 평화 회의에도 박 광전 등 4인(별록30)이 참석하고, 10월에는 반백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영역 교전](全八根역)을 발간하는 등 5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 회상은 해외 포교 진출에 더욱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