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교사(圓佛敎敎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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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교사(圓佛敎敎史)

제2편 회상(會上)의 창립(創立)

제4장 끼쳐주신법등(法燈)

2. 최종 회규의 시행과 전법 게송

이원 십부제(二院十部制)를 골자로 하는 새 회규를 시행한 후 만 7년만인 원기 27년(1942·壬午) 4월 26일에, 종법사와 회무총장 아래 5부(部)를 두는, 불법연구회 시대 최후의 회규가 채택 시행되었다.
원기 26년(1941·辛巳)부터 박 장식(朴將植)에게 명하여 기초케 하신 이 회규는 총 12장 250조로 되어 있는 바, [하시(何時)든지 그 임무를 대행 할 자격자가 있을 때 교체]하기로 되어 있던 종법사의 임기를 6년제로 규정하고, 회장과 양원장 대신 회무총장 1인을 두며, 종전의 10부를 총무·교무·서무·공익·산업 5부로 줄이고, 총부 중요 직원으로 원의(院議)를 조직하여 총부 사무의 원활을 기하며, 지방에는 수반 지부를 두어 관내 교당을 통할하게 하고, 총지부 중요 직원으로 본지부 연합회를 조직하여, 종법사 선거, 수위단원 선거 등을 하게 하며, 임기 6년인 남녀 각 9인의 수위단원과 단장 1인으로 수위단회를 조직하여, 종법사를 보좌하는 최고 기관으로 하였고, 선원(禪院)과 강원(講院)의 제도를 상세히 규정한 것 등이 특색으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초대 회무총장은 대종사께서 겸대하셨고, 새 인물로 5부장(별록21)이 임명되어, 사무 체제는 간소화 되었으나, 시국이 더욱 긴박해 짐에 따라 새 체제는 충분한 기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였다.
이 무렵 부터 대종사께서는 열반의 시기가 임박함을 짐작하신 듯, 그 동안 진행 중이던 정전(正典)의 편수를 자주 재촉하시고, 26년(1941·辛巳) 1월 28일에는 선원 대중에게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는 게송과, 동정간 불리선 법(動靜間不離禪法)을 함께 내리시며 [옛 도인들은 대개 임종 당시에 바쁘게 전법 게송을 전하였으나, 나는 미리 그대들에게 이를 전하여 주며, 또는 몇 사람에게만 비밀히 전하였으나, 나는 이와 같이 여러 사람에게 고루 전하여 주노라. 그러나, 법을 오롯히 받고 못받는 것은 그대들 각자의 공부에 있나니, 각기 정진하여 후일에 유감이 없게 하라] 하시었다.
대종사, 그 후 부터는 예회·야회·선(禪) 시간 등 모든 법회에서 생사 인과에 대한 법설들을 주로 많이 하시고, 자주 제자들에게 부촉 하시기를 [내가 이제는 깊은 곳으로 수양을 가려 하노니, 내가 만일 없더라도 마음을 더욱 추어 잡으라]하시고, 하루는 송 규에게 [내가 여기에 오래 머무르기 어렵겠노라]하시며, [자력으로 대중을 거느려도 보라]고 부촉하시었다.
또한 28년(1943·癸未) 1월에는 새로 정한 표어(處處佛像事事佛供無時禪無處禪)들과 교리도를 발표하시며 [내 교법의 진수가 여기에 들어 있건마는 나의 참 뜻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꼬]하시며 [큰 결정을 세워서 외길로 나아가야 성공이 있으리라]하시고, [스승이 법을 새로 내는 일이나 제자들이 그 법을 받아서 후래 대중에게 전하는 일이나 또 후래 대중이 그 법을 반가이 받들어 실행하는 일이 삼위 일체 되는 일이라 그 공덕도 또한 다름이 없나니라] 하시었다.